2014, 이선영

고양창작스튜디오 작가와의 대화 2014-04 中


 작가가 ‘플라나리아 패턴’이라 이름 붙인, 종이에 마블링해서 생겨난 형상을 활용했던 박은하의 작품들은 굳어져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출 또는 분출된 어떤 힘을 가시화함으로서 주목받았다. 은평 뉴타운 지역의 어지러운 재개발지 풍경이나 사람 얼굴이 오래된 밧줄 뭉치로 변해있는 괴기스러운 초상, 쩍 갈라진 대지가 깊이 상처 난 살 같은 느낌을 주는 요즘의 그림은 ‘박은하 표’로 이미 잘 알려진 그 패턴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열심히 그림만 그리던 작가가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 컬렉션을 섭렵하고 다녔던 짧지만 강렬했던 체험이 스스로 ‘동어 반복적’으로 느껴졌던 이전 회화와 단절하게 한 듯하지만, 인물이나 풍경 같은 평범한 광경에서 요동치는 사건을 길어내는 방식은 여전하다. [망가진 바다], [망가진 꽃밭] 등으로 붙여진 작품 제목은 변형에 내재된 파괴적 충동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실제로 망가지기도 했겠지만, 작가의 시선에 의해 더욱 극적인 장면으로 변모한다.

 그것은 분단이나 재개발 같은 그자체로 민감하고 착잡한 소재를 치장, 또는 과장하는 문제는 아니다. 가령 박은하는 대학과제물 때문에 딱 한번 자화상을 그린 이후, 자화상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화상에 넘쳐나는 나르시시즘이나 그 과도한 존재감에 대한 거부감에서였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인 것이다. 진실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주변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허상처럼 다가오고, 그것이 허상인 한 유동적인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 역시 과정 중에 있다. 주체와 대상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진동하고 공명한다. 그것이 바로 감각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끊임없이 카오스와 대결하는 사유를 말하며, 여기에서 ‘감각을 진동시키다-감각을 결합시키다-감각을 트이게 하거나 쪼개거나 비어내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것이 이전의 감각을 지속하면서도 갱신해 나가는 박은하의 새로운 예술적 개념이다.

 / 이선영 (미술평론가)

2012, 고원석


"100.art.kr: 한국 미술가 100명의 작품 세계 (아르코미술관 편, 열린책들, 2012년 3월)" 中



 박은하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환경의 견고한 틀 속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는 개인들이다. 정밀하게 직조된 시스템의 강력한 권위 앞에서 대부분의 개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굴종하며 존재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개인의 일상을 제어하는 이 시스템의 질서는 개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박은하의 그림이 보여주는 개인과 시스템간의 관계는 극단적이다. 초기에는 시스템의 구조 안에서 영혼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표현했었다. 그들은 짙은 색의 정장을 입고 규격화된 자리에 도열한 채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익명의 남자들이거나, 변함없는 행로를 반복하는 지하철에 무표정하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최근 그림에서는 시스템의 폭력적 질서로부터 배제되어 변방의 비현실적 영역으로 물러난 사람들의 모습들을 묘사한다. 일반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지만 어딘가 분명히 그 존재가 구분되는 노숙자의 모습이나 고깃집의 자극적인 간판 아래 병으로 인해 부푼 배를 드러내놓고 쓰러져 있는 부랑자의 모습이 그러한 예이다. 일견 그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틀 안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경계 밖에 철저히 격리되어 있는 외부인들일 뿐이다.

 박은하의 그림은 일상의 보편적 풍경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익명의 인간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한편에 마치 열로 인해 녹아 내린 금속처럼 본질적 질서를 잃고 흘러내린 형태가 야기하는 극적인 반전으로 인해 그 간격은 해체되고 있다. 액상의 형식을 가진 그것은 주변의 다른 환경적 요소들로부터 녹아 내린 것들과 함께 뒤섞이며 캔버스 밖 어딘가로 분출되어버린다. 때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캔버스로 연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캔버스를 벗어나 월페인팅(wall painting)의 형식으로 확장된다. 비정형의 모습으로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역동적으로 흘러나가는 이 분출은 결국 수많은 관계들이 뒤섞인 채 흘러가는 삶의 본질적인 모습일수도 있다. 그 혼란스러운 용해와 접속, 그리고 분출을 통해 설정되는 새로운 삶의 관계들을 박은하는 매개하고 있는 것이다.

/고원석